옛동견

하루우라라와 셀러리맨

쎄니체니 2010. 5. 11. 11:35

2004-03-23 13:42:34 
 
경마장 가보신 적들 있나요?
예전에 동기 녀석이 경마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었던 관계로 우연치 않게 몇 번인가 과천 경마장에 가 본 적이 있습니다. 천부적인 승부사 기질이란 전혀 없는 저로서는 갈때 마다 잃기만 할뿐이었죠. 뭐 경마 뿐이겠습니까? 고스톱, 당구, 복권, 증권까지 소위 일확천금을 노릴 만한 것들에서 재미 본 기억이라곤 전무하다 하겠습니다.(단, 일본에서 빠찡코해서 딱 한 번해서 5만엔을 딴 기억은 사고에 가깝다. 그 후로 나의 도박운은 다 쓴 걸로 알고 다시는 안하고 있다.)
  
요즘 일본에서 "하루우라라"라는 경주마가 뜨고 있습니다. 인기가 아주 대단합니다. 경주가 있는 날이면 일반인은 물론이요 코이즈미 총리 마져도 이 경주마의 경주 결과를 기자들에게 리얼타임으로 물어볼 정도니까요....

"하루우라라"는 어제까지 106전 출전해서 단 한번도 우승하지 못한 비운의(?) 경주마입니다. 쉽게 말해 같은 더럽게 능력 없는데다가 재수도 안따라 준 녀석이죠..(2위는 4번 한 적있음)
"달려도 달려도 이기지 못하는 능력 없는 말.."은 " 일만 하고 살면서도 회사에서나 집에서나 인정을 받지 못하는 셀러리맨" 과 오버랩이 되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것 입니다.

또 하나,
일본어에 추첨이나 내기 따위에 당첨되었을 때 当る(あたる,아따르)라는 동사를 사용합니다. "당첨되다, 해당하다"라는 뜻을 가진 아따르는 "(자동차사고)를 당하다"의 당하다라는 의미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루우라라"라는 단 한번도 "아따라나이"(당첨되지 않다)한 녀석이니까, 즉,"달려도 달려도 (자동차 사고 따위가)없다"라는 뜻으로 해석되어, 자동차 안전을 기원하는 상징으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습니다. 이 녀석의 마권은 경마장에서 돈으로 환전되는 일은 없으나 아무도 버리는 사람이 없습니다. 모두 자신과 지인의 차속에 보관되는거죠.

어제 高智현의 지방 경마장에서 이 녀석의 106번째 레이스에는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경마장 개장이래 최초의 만원, 하루 최대 매출(종정 4억엔에서 어제 9억엔) 기록을 갱신하는 등 "하루우라라"의 인기를 실감케 했습니다. 게다가, 어제는 일본의 "박태종"이라고 할 수 있는 "다케다 유타가"가 이 녀석의 기수로 등장하였습니다. 경마장 상태 또한 이 녀석이 과거 4번 2등을 했을때와 같은 조건인 빗 물이 가득 고인 상태. 상대말들마저도 그저그런 녀석들... 이 녀석이 우승할 조건은 다 갖추었다고 할 수 있죠....
단식 배당율은 과거 최고의 1.2배...

그러나, 이 녀석은 일본인들에게 실망(?)을 시키지 않고, 12마리중 11번째로 들어왔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녀석 때문에 돈을 잃었지만, 아무도 아쉬워 하지 않더군요...

이 녀석을 보면서  조금 부족하지만, 열심히 사는 건 나쁘지 않다는 걸 느꼈습니다.

봄입니다. 기분 전환 삼아 경마장에 갈 수 있는 여유를 가지고 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