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동견

wirebee

쎄니체니 2010. 5. 11. 12:38
2004-06-29 15:25:24

요즘 참 바쁘네요.. 전용 홈피 오픈했죠.. 광고하러 다녀야죠.. 컨텐츠 추가해줘야죠.. 게다가 일본분들은 한국어 깨진다고하니 보는 법 가르쳐주고 다녀야죠.. 덕분에 오픈 일주일도 안되 방문회수가 1000회를 넘었군요.. 요즘처럼 정신 없이 지내 본 적도 드문 것 같습니다.. 참, 회사 생활도 눈치껏 자~~알 하고 있습니다.^^  

와이어비.. 이름 뿐만 아니라 홈페이지를 봐도 특히 뭘하는 회사인지 몰랐다. 예정대로 한국에서 면접을 했으며, 연봉은 사내 규정에 맞추어서 지불하겠다는 상당히 어바웃한 조건으로 결정했다.
회사를 그만두고는 비자(다시 생각해봐도 짜증날 정도로 복잡한 일이다.)를 준비하고, 살 곳을 알아보고, 지난 회사에서 긴급 제안프로젝트에 투입되어 알바(혼타 사이트 구축 제안.. 아이러니 하게도 회사 그만두고 가장큰 프로젝트를 수주했다..)도 좀 하고.. 그러다보니 두 달이 금방 지나갔다. 결국.. 일본에 가는 날까지도 와이어비라는 회사가 뭘하는 회사인지 파악도 못했다. 당연히 나의 임무가 무엇인지도 알턱이 없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정말 터무니없는 놈이었던 것이다.

세번째 도일이었다. 97년에 일년, 99년에 일년.. 또 01년째에..
당시 앤이었던 아내도 참 지겨울 법도 했습죠.. 이번에 가면 진짜 고무신 꺼꾸로 신는다는 협박에.. 가서 자리 잡으면 결혼하자라는 거짓말로 응수를 했고, 뭘 어쩌려고 또가냐는 어머님의 걱정에는 연봉의 액면가만 강조해서 돈벌어 오겠다고.. 2년만 있다고 오겠다는 거짓으로 대응했다.. 가장 쉬운 상대는 아버지였다.. 그냥 소주 한 잔 하면서 다녀오겠다고 했고.. 아버지는 별반 말이 없으셨다.. 언제나처럼..
1년에 한 번씩 떠나는 집이었건만... 그 때마다 내가 잘하는 짓인가라는 물음에는 내 스스로도 정확히 답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내가 믿는 말은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 라는 말 뿐이었다.. 남들이 하지 못한 것.. 그것을 해보고 싶다.. 맹목도 이 정도면 주책이요 아집이라고 할 지도 모를 일이다.

내가 일본에 도착하고 며칠 있어 뉴욕 무역센터에 비행기 테러가 있었다. 그 큰 빌딩이 무너져 내리고,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내가 처음 일본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할때가 바로 그 즈음이었다.

계속~
  

  
드라마남편 (2004-06-30 10:37:56) 코멘트삭제
우와..흥미진진...저 처음에 경험했던 일본에서의 직장생활이 생각이 나는군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