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태풍 때문에 바람이 엄청나게 불었습니다. 얼마나 불었던지 자칫 지진으로 오인할 정도였죠. 일본이나 한국이나 이 계절의 태풍은 다를바가 없습니다.
대기업이긴 했으나 들어간 부서에는 실장님과 저, 그리고 엔지니어 한 명, 경리 한 명의 단촐한 부서였습니다. 그때까지의 분위기와 별로 다를 것도 없었습니다. 하는 일도 신규 비지니스였기 때문에 정해진 일이 없었으며, 늘 새로운 고객과 비지니스 모델을 찾는데 정신 없었습니다.
처음 입사시에는 한국의 시스템을 일본에 런칭하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전에 하던 일과 같은 것이었죠. 거꾸로 말하자면 한국과 연계된 일을 계획했기 때문에 들어갈 수 있었는데.. 막상 시작하려 하니까 쉽지 않았습니다. 초기 비용이 몇 억엔이 들어가는 일에다가 회사의 성격상 그런 투자를 하는 곳이 아니었으며.. 두 세명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결국, 입사 3개월도 못되 당초의 계획은 취소가 되었습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그 때의 판단은 올바른 것이었지만.. 저로서는 특별히 할 일 없어지게 된 것 입니다. 다시 고민에 빠지게 되었죠.. 여기서 살아남는 방법을 배우던가.. 아니면 관두던가...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정사원이었기 때문에 어지간히 바보짓을 하지 않는 이상 짤릴 일은 없었습니다.
실장님도 저에게 앞으로는 프로젝트 메니저로서 경험을 쌓아달라고 했고.. 본격적으로 엔지니어로서의 수업을 받는 것으로 일단락 되었습니다.
그러나, 신규 비지니스에 그럴싸한 프로젝트가 있을리 만무했고, 1년 정도의 네트워크 경험으로는 제대로된 제안서는 커녕, 상대방이 무슨말을 하는지 알아 듣기도 힘들었죠.. 하루 하루가 깨지는 연속이었고, 책방에 들러 이 책 저책을 사가며 늦은 공부를 시작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솔직히 제가 담당했던 네트워크분야는 상당히 어려운 분야였고, 대학에서 전공한 녀석들 조차도 쉽지 않을 정도의 고도의 지식을 요구하는 것들이었습니다.
실제로 제안을 하기 위해 상대방 담당자와 만나서 듣는 단어들은 처음 듣는 단어들 뿐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L3 는 시스코의 카타리스트 4500시리즈로 생각하는데 우리 같은 규모에 오버스펙은 아니냐는 질문을 받으면.. 곰곰히 생각하다가 음.. 이런 경우는 정확히 트래픽 계산을 해봐야 알겠습니다. 돌아가서 계산해서 제안하겠습니다.. 라는 식으로 얼버무리고 돌아 왔습니다. 그리고, L3는 뭐하는 놈인지.. 시스코는 뭐하는 회산지.. 카타리스트는 어떤 제품인지 하나하나 공부를 했습니다. 불행중 다행이도 회사가 지명도가 있던 편이라서.. 벤더에 연락을 하면 담당자가 불이나게 찾아와서 제안서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 때마다 챙피를 무릅쓰고 하나씩 지식을 얻었습니다. 정말 살얼음 판을 걷는 기분의 하루하루 였습니다.
당시엔 그런 저의 무지함을 들키지 않으려 상당히 애를 썼고, 아마도 걸리지 않았고 잘 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너무도 초보적인 것들이라 상대방도 100%눈치 챘을 것이었습니다..ㅋㅋ
간절한 마음으로 무엇인가를 얻으려 하면 생각보다 빨리 성과가 있는 법인가 봅니다. 그런 절박한 생활을 몇 개월하다보니 서당개 3년보다 빨리 풍월을 읽게 되었습니다. 스스로 자격증 없는 의사가 치료하는 것과 같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짧은 시간에.. WAN에 대해 LAN에대해 각 기기에 대해 아는 척을 하게 되었고.. 조금이나마 지식이 있는 사람에게는 견줄수 없었지만.. 저만큼 초짜들에게는 자신을 가지고 설명할 수 있는 단계에 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세계에서 살아 남기 위해서는 자격증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게 또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어깨 너머로 배우는 것과 정식으로 시헙에 합격하기위한 지식은 다른 것이었습니다. 괜히, 비싼 책만 사는 결과가 되었지요. 약 2년이 지난 지금.. 책만 가지고는 힘들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아니.. 자신의 나약한 의지 탓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렇게 어렵사리 적응 해왔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