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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동견

전화장사

매니저가 휴가를 떠났습니다. 앞으로 일주일간 해방의 시간이죠. 회사 일은 여전히 많지만.. 가끔은 이렇게 땡땡이를 치는 것도 나쁘지 않겠죠?...

한일비지니스를 할 수 있으리라 꿈을 꾸고 일본에 건너온 저가 담당하는 일은 한국의 IT관련 아이템을 일본에 런칭하는 것이었습니다. 소위 IT상사였습니다.(당시 직원 10명 정도) 사장은 유명 광고회사 사장비서실 출신이었고.. 이제 생긴지 1년도 안된 새로운 회사로.. 온갖 제품에 흥미를 가지고 있는.. 잡동산이를 모아들인 회사를 운용하면서도 결코 단순한 상사는 아니라고 박박우겨대는 놈이었습니다. 기술력도 코어 제품도 없으면서 프라이드만 높았습니다. 손님이 오면 자랑만 늘어 놓습니다. 아직도 자신이 그 옛날 대기업 신분인줄 알고.. 당연히 뭐하나 제대로 팔리는게 없었지요..

들어간지 한 달만에 이 사장놈이 저를 길들이려고 시작했습니다. 나중에 물어보니 다들 한 번씩 당했다고 하더군요... 월요일 정례회의 시간이면 어김없이 불화살 같은 야단이 떨어졌습니다.. 3년전일이라 무슨 이유로 야단을 맞았는지 잘 기억은 안납니다만.. 대략 그렇게 잘못한 것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회사 들어가서 한 달만에 뭐그리 잘못을 했겠냐?) 사장놈한테 이유 없이 깨지고.. 동료들한테 위로 받고.. 그렇게 몇달을 참았지요..

제가 담당했던 아이템은 가라오케기기 였습니다. 노래를 부르고 나면 동영상을 씨디로 구워주는 기계였는데... 한대에 1000만원이나 했습니다. 당연히 한 대도 못팔았습니다... 그 외에도 온라인 겜.. 무슨무슨 타이핑 게임.. 웹3D 관련 솔루션도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규모 10명의 회사에서 이것 저것 하다보니 될 일이 없지요.. 다루는게 많다보니 한국 출장은 한 달에 한 번꼴로 다녔습니다.. 한국에 가면 일본에서 왔다고 엄청 잘들해 줍니다. 밥한번 제돈 내고 먹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한국 출장만이 유일한 스트레스 해결 방법이었죠...

3개월 동안 미친듯이 일했지만.. 단 1엔도 수익을 못내고 있었습니다. 사장의 헛소리도 그랬지만... 너무나도 잡다하게 하는 바람에 정신 차리기도 힘들었습니다... 그 때 새롭게 만난 것이 인터넷 전화 였습니다. 지금은 주위에서 쉽게 들을 수 있는 단어가 되었지만.. 당시만해도 천하의 NTT와 싸우는 것과 비교되서 다들 두려워했던 기술이었지요.. 저 역시 뭐가뭔지 몰랐지만... 대략 돈이 되겠다 싶다는 직감이 왔습니다... 적당히 공부하면서 더더욱 자신감에 불타 올랐죠..(원래 적당히 아는 것이 더 무서운 법입니다.)

그 때 같이 했던 회사가 있었으니... 맥리서치라는 이 또한 직원 10명 규모의 작은 회사 였습니다.. 사장은 시원시원했으며.. 논리 정연했습니다.. 때마침 회사 사장의 엄격한 교육(?)에 지쳐있었던 저로서는 정말 멋진 사람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미쯔비시 엘레베이터의 최고 설계엔지니어로 일했던 경력의 실력파... 정말 이런 사람과 일해보고 싶다고 생각을 했던 찰라... 오파가 왔습니다..
같이 일하지 않겠냐고....

사람 보는 눈도 없고.. 제품 보는 눈도 없는... 판별력 0에 가까운 저로서는 대단히 매력적인 제안이었습니다..
그래서 서슴없이 결정해버렸습니다...
"같이 전화장사 해보고 싶습니다..!!"
어찌어찌해서 단 4개월만에 처음으로 들어간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습니다...